목회칼럼

Jesus Love Church Pastor Column

20180513/ 오치용 목사/ 목사 아빠의 딜레마

Author
admin
Date
2018-05-19 08:06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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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아빠의 딜레마

오치용 목사

지난 주일에 이야기했듯이 제 아내가 웨슬리 교회 부목사로 파송이 됐습니다. 우리 교단은 부부가 목회자일 경우에 가능한 가까운 교회로 파송해서 일하게 하는 편입니다. 우리도 가깝게는 30분, 멀면 1시간 거리의 교회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깝게 붙여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처음 우리 교회로 파송이 됐을 때 딸이 '엄마가 이 건물의 미국교회 부목사로 오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이루어지기 힘든 희망사항이었는데 정말로 현실이 됐습니다. 물론 제 아내의 목회적 소명과 재능이 웨슬리 교회와 맞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웨슬리 교회의 목사로써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길 것입니다. 그 덕분에 저희 가정도 4년 만에 다시 같이 살게 됐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3년 동안 우리 교회에서의 목회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다는 것은 늘 아쉬웠습니다. 특히 딸은 아빠 없이 중학생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보통 2주에 한 번 정도 제가 주일 저녁에 식구들에게 가서 월요일 하루를 함께 보내곤 했습니다. 집에 가면 딸 아이 라이드는 언제나 제 몫입니다. 개들 똥 오줌 치우고 산책시키는 일도 제가 좀 더 합니다. 식구들과 함께 산책도 하고 가끔 밖에 나가서 같이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기도 합니다. 어떤 특별한 걸 해서가 아니라 이런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주중에 식구들이 샴페인에 내려와서 같이 살 집을 알아봤습니다. 딸은 크고 좋은 집을 원했습니다. 딸이 원하는 정말 좋은 집을 만났는데 한번 큰 맘 먹고 질러볼까 하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거 같아 결국 포기했습니다. 딸 아이의 상심이 컸습니다. 그날 저녁, 부모가 목사라는 이유로 딸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아빠와도 떨어져 살아야 했고 친구들과도 자주 이별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가족과는 같이 살게 됐지만 다시 정든 친구들을 떠나야 합니다. 친구들처럼 크고 좋은 집에 살고 싶지만 그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제가 목사라는 걸 아쉬운 면에서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그동안 아이에게 아빠 엄마가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희생을 강요해 온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가 목사이지 딸은 목사가 아닌데 말입니다.

아내가 잠들기 전에 딸에게 시편 말씀을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늘도 만드시고 땅도 만드신 전능하신 분이라는 본문이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딸이 그렇게 모든 걸 만드신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가 둘인데 집 하나 살 수 없다고 한탄을 하더랍니다. 그 얘길 전해 듣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고 아빠 된 입장에서 그 한탄을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눈 질끈 감고 딸을 위해 한번 지를까요? 아니면 이번에도 아내와 제가 원하는 대로 할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뭘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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