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Jesus Love Church Pastor Column

20190414/ 오치용 목사/ 세월호 5주기

Author
admin
Date
2019-04-15 23:13
Views
5

세월호 5주기

오치용 목사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속절없이 흘렀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글을 쓰자 생각했습니다. 세월호 글 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여러 글들을 읽고 집안을 서성대고 생각을 정리해도 쉽사리 쓰여지지 않습니다. 유독 더 어려운 이유는 세월호를 한동안 저 한 켠에 밀어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꼭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처음 참사가 일어났을 때는 부활절을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저에게 기독교 신앙의 근본부터 다시 되물었습니다. 부활이 뭐냐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우리 신앙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매일 산책하던 아름다운 미시건 호수가 무섭게 보였고 딸과의 대화가 애틋했습니다. 그때부터 학교에 아이를 내려줄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갑작스러운 헤어짐이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에 대해 꾸준히 글을 쓰고 설교를 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신앙 양심을 따라서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 의해 세월호에 정치적 색깔이 덧입혀졌습니다. 이 비극과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말들, 행동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런 일에 교회가 앞장섰습니다. 저도 그런 시선들을 조금은 감당해야 했습니다. 언젠가 세월호가 우리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관한 주제로 설교를 했는데 한 친구가 찾아와서 세월호가 우리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비겁한 마음, 무뎌진 신앙 양심이 세월호를 한 켠에 밀어 두게 했습니다.

여러 변화들이 없지 않았지만 여전히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습니다. 아직 밝혀진 게 없고 처벌 받은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도 여전합니다.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는 일도 여전히 더딥니다. 유가족들은 교회로부터도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롬 12:15) 우리가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함께 기뻐했는가?” “함께 울었는가?” 물으면 우리가 그어놓은 이웃의 한계들을 절감하게 됩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울어야 할 이웃이 아니라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삶의 자리 어디쯤에서 멈춰 있는 걸까요?

5년 전 그때처럼 올 해도 부활절을 앞두고 세월호 기념일을 맞습니다. 어쩌면 세월호와 부활절은 신앙의 역설을 잘 보여주는 조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십자가는 역설로 가득합니다.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 불리며 희롱 당합니다. 십자가 아래서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최고의 신앙고백이 울려 퍼집니다. 죽음이 무수한 생명으로 인류 역사에서 되살아납니다. 세월호를 정직하게 대면할 때 신앙의 역설을 발견합니다. 상처 위에 새살이 덧대 지듯이 이 참혹한 비극 속에 생명들이 되살아나는 부활의 역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걸 찾고 이루어내는 건 오롯이 우리의 몫입니다. 가방에 내내 매달려 있던 노란 리본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습니다.

Total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