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Jesus Love Church Pastor Column

20191103/ 오치용 목사/ 악에서 구하소서

Author
admin
Date
2019-11-0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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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서 구하소서

오치용 목사

세월호 사고 당시 발견된 희생자가 맥박이 있었지만 병원으로 제대로 옮겨지지 않아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희생자는 응급 헬기로 20분이면 이송이 가능했지만 네 번에 걸쳐 배에서 배로 옮겨졌고 4시간 41분만에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습니다. 희생자는 단원고 학생인 임경빈 군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5시 24분에 사고 지점에서 100m 떨어진 바다에서 임군이 발견됐고 곧 해경의 배로 옮겨졌습니다. 연결된 병원에서는 심폐소생술을 지속하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임군은 배에 남겨졌습니다. 이 사이에 헬기가 세 번이나 뜨고 내렸는데 임군을 태우는 대신 배에 있던 해경청장과 서해청장을 태웠습니다. 뒤늦게 임군은 작은 배로 옮겨졌고 20분 후 다른 배로, 30분 뒤에 또 다른 배로 옮겨진 뒤 밤 10시 5분에 숨진 채로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임군의 상태는 적절한 이송이 이뤄졌어도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구조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다투는 생명을 두고 헬기를 탄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들에게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죽어가는 사람을 놔두고 먼저 헬기를 탔던 걸까요? 무엇이 그런 행동을 낳게 했고, 지금은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있을까요?

저는 그 사람들이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가정에 돌아가면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일 것입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자녀들의 학업을 걱정하는 아버지들일 것입니다. 군사 독재 시절 자신에게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고문을 행하던 형사가 다정한 목소리로 자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소름이 끼쳤다는 누군가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이것이 악의 실체입니다. 악은 뿔 달린 모습으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악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행동 속에 악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굳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가져오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 더 악하고 조금 더 선할 수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악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주의하지 않는다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뻔뻔하게 목소리를 높이거나 무심하게 침묵하는 정치인들, 통제되지 않는 공적인 힘을 휘두르는데 주저하지 않는 검찰, 누군가를 죽이자는 글귀를 들고 군복을 입고 광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 신앙의 이름으로 미움과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 사람이 죽어 나가도 멈추지 않는 악플들을 보면서 거대한 악의 세력이 세상을 뒤덮고 있음을 봅니다. 문득 이 거대한 악에게 질 수도 있겠구나 싶어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주님의 기도 한 구절이 목구멍을 가득 채웁니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아껴줄 세상은 불가능한 걸까요?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은 단지 성경 속의 이야기일 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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