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Jesus Love Church Pastor Column

20170205 / 목회칼럼 /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Author
admin
Date
2017-02-0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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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저녁에 웨슬리 교회에서 한 교인의 장례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족들과 오랫동안 웨슬리 교회를 다녔고 주일학교와 어린이 성가대 지휘자로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나이가 너무 젊었습니다. 이제 32살이었고 9 살짜리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주 전 목요일 아침에 갑작스럽게 숨졌다는 정도만 알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웨슬리 교회 목사님과 스텝들이 모두들 슬퍼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위로의 마음을 나누려고 장례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본당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예정됐던 시간보다 예배가 늦게 시작된 덕분에 30분 가까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기도를 드리며 한 죽음을 차분히 마주 대할 수 있었습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 나도 죽을 거라는 사실, 죽음은 나이 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자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배당 앞의 슬라이드는 그녀가 살아있었을 때의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진 중에는 제가 언젠가 딸과 함께 갔던 디즈니월드의 성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아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아들과 디즈니월드에 가서 저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 나와서 기도를 하다가, 찬양을 하다가 울컥 하는 감정을 감출 수가 없어서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 예배에는 슬픔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축하가 있었고, 유머가 있었고, 다시 만나자는 인사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과 하나님 나라 입성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유머는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이들의 방식입니다. 다시 만나자는 인사는 부활의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간은 목사님이신 그녀의 할아버지가 나와서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혼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나이가 드셨지만 차분한 어조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주었습니다. 손녀를 먼저 보낸 슬픔이 이야기 내내 짙게 베어 있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다시 만나자는 말이었습니다. 그 대목에서 저도 그 말을 따라 읊조렸습니다. “See you again.”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결국에는 헤어질 때가 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하지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마냥 슬퍼하기만 하는 대신 축하 하기도 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벧전 1:3). 우리는 살아있는 소망(living hope)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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