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Jesus Love Church Pastor Column

20181125/ 오치용 목사/ 평화는 가능한가?

Author
admin
Date
2018-11-2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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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가능한가?

오치용 목사

2030 컨퍼런스가 시작된 지 어느덧 17년이 되었습니다. 17이라는 숫자가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그 세월 동안 씨앗을 뿌렸을 고마운 손길들, 그 씨앗이 내려앉았을 무수한 토양들, 그 순간을 감싸고 있었을 여러 색채의 은혜들을 생각하면 17년의 세월은 헤아릴 수 없는 감사의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2030에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에너지입니다. 그 젊음의 에너지를 마주 대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즐겁고 설렙니다. 그렇게 자기 삶의 길을 찾던 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궁금합니다.

올 해는 ‘평화’라는 주제로 모였습니다. 지난 2년 동안은 하나님 나라가 주제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와 다가올 미래의 하나님의 다스림을 포함합니다. 당연히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신앙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담아낸 것이 지난 해의 주제, ‘하나님 나라, 살다’였습니다. 평화라는 주제는 그런 맥락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평화라는 구체적인 주제에 담아낸 겁니다. 교회에서 평화라는 말은 낯선 말입니다. 평화라는 말보다 평안이라는 말이 좀 더 친근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본래의 의미를 더 잘 담아내는 말은 평화입니다. 평안이 개인의 내면적인 차원에 집중한다면 평화는 관계적인 차원에 집중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 세상과의 관계에서 복음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 신앙은 너무나 사소한 문제들, 개인적인 문제들로 축소되었습니다. 교회들은 대부분 교회 내적인 일에 묶여버렸습니다. 자기 개인의 문제, 자기 교회 문제에 함몰되어서 그걸 붙들고 씨름하기에도 벅찹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심하고, 그 일들이 신앙과 무슨 상관이 묻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전혀 들을 수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커지고 교인들은 많아져도 우리 사회 현실의 변화에 기여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평화는 오직 자신에게만, 교회에서만 유효한 평화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평화의 복음은 우리 내면의 평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세상(요 3:16)에서 모두가 함께 누리는 평화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길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분께서 사셨던 평화의 걸음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 분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 계셨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불의에 분노하시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의와 평화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것이 우리가 동성애에 대해서 고민하고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북한에 대한 이해를 가지려 하고, 평화와 사회정의에 대해서 다루는 이유입니다. 평화의 주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평화의 복음이 가능한 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그 복음을 살아내야 할 교회 안에서, 평화라는 주제의 소통이 과연 가능한 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2030 컨퍼런스는 실험이자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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