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Jesus Love Church Pastor Column

20200209/ 오치용 목사/ 설교, 그 영예로운 멍에

Author
admin
Date
2020-02-1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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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영예로운 명예

오치용 목사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드리고 있을 즈음에 저는 인디애나 블루밍턴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일 것입니다. 지난해 2030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안성용 목사님과 강단교류를 한 번 하자고 얘기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블루밍턴한인교회도 우리와 같은 캠퍼스 교회라 강단을 교류하는 것이 여러모로 의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같은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마음을 모으는 일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는 시편의 말씀을 이루는 일입니다. 나중에 두 교회가 함께 힘을 모아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강단교류의 또 하나의 장점은 다양한 말씀이 들려진다는 점입니다. 생각해 보니 지난 1년 동안 주일 예배 설교를 쉰 적이 없었습니다. 방학 때라도 좀 쉴까 생각도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해왔습니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독점하는 일은 설교자에게도 회중에게도 건강하지 않은 일입니다. 설교자는 충분한 쉼과 채움이 있을 때 더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회중들도 다양한 설교를 통해 균형을 잡고 신앙의 깊고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욕심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설교를 들을 기회를 빼앗은 것 같아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오늘 안 목사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신선한 영적 양식을 충분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전한다는 일은 언제나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삶과 제 삶이 하나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깊은 연대감을 느낍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은 영예로운 일이지만 때로는 멍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전하기 전 먼저 그 말씀 앞에 홀로 서야 합니다. 정직하게 말씀을 대면할수록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말씀과 말씀을 전하는 사람 사이의 괴리감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사람의 심정은 뻔뻔한 사람이 아닌 이상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중과 함께 같은 심정으로 서서 듣게됩니다. 저의 경험상 설교를 통해서 가장 믿음이 좋아진 건 바로 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차원에서 설교는 멍에입니다. 전도사 시절에는 설교할 기회가 많지 않아 설교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매주 두 번씩 설교를 해야 합니다. 매일 말씀묵상 글도 씁니다. 그러니 일주일 내내 말씀을 붙들고 삽니다. 은퇴하고서 가장 좋은 일이 있다면 설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주 전 본문과 제목을 정해서 주보에 냅니다. 그때부터 본문을 읽고 묵상하는 과정을 틈틈이 거칩니다. 한 편의 설교에 대략 하루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이 언어를 통해 전해지기 때문에 언어를 고르는 작업을 설교 직전까지 하는 편입니다. 성격 탓일 수도 있습니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는 딸은 “아무도 안 듣는다고, 제발 대충 하라고” 타박입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할 때 말로 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것이 이 영예로운 멍에를 계속 짊어지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제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여러분과 쉽게 나누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봤습니다. 오늘 함께 말씀을 나눌 블루밍턴교회의 교우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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