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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이지은(청년부)/ 미국에서 아시안으로 살아간다는 것 1

Author
admin
Date
2019-02-0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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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시안으로 살아간다는 것 1

이지은(청년부)

오늘은 주보글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서 살아가는 미국에서 ‘아시안’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저의 고민과 극복입니다. 저는 한국나이로 26세, 만 24세의 나이에 일리노이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줄곧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인종문제를 크게 고민할 계기가 없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외국인과 마주치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으로서 언어적 어려움도, 인종 배경으로 인한 차별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미국에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오니 때 아닌 사춘기 때의 혼란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춘기 때의 대표적인 과제는 ‘정체성 형성’이죠. 저는 제 자신을 인간 차원에서는 고민해 봤어도 굳이 ‘아시안’이라는 관점에서 고민해 본 적이 없었고 제 정체성에는 아시안이라는 사실이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의 존재감을 갖고 있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보이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 아시안이라는 것이 무시 못할 존재감을 지니더군요. 사실 ‘제도’와 같이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여태껏 쌓아온 논리와 이성으로 제 자신을 방어할 힘이 있었지만, 암암리에 곳곳에 형성되어 있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분명히 피부로 느껴지는 인종차별적 요소들에는 도무지 제 자신을 방어할 방법이 없어 참 괴로웠습니다. 당하고서도 당한지 모르거나, 나중에야 알게 될 때의 그 불쾌함이란.. 사실 그런 것들은 매우 미묘한 지점에 있기 때문에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제 자신도 이것이 정말 미국사회에 있는 인종차별적 분위기 때문인지, 단지 나의 자격지심에서 온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기 때문에 심증은 있어도 쉽게 입밖으로 꺼내기도 어렵습니다. 혼자 오바한 경우 부끄러움은 내 몫이니까요. 그리고 많은 경우 굳이 언급하지는 않지만 미국사회의 미묘한 인종차별에 불쾌해하면서도 아시안이라는 것에 긍지보다는 해소되지 않은 콤플렉스를 갖고들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또는 관련 고민을 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비율이 미국사회에서 소위 “주류”로 여겨지는 백인들의 인정을 받는 모델을 충실히 학습하고 소화하여 나름대로 잘 섞여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인종차별을 받는 인종과 그 인종에 속하는 자신을 분리하여 인종차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인종차별은 받을 만한 사람만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2차 가해를 하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콤플렉스가 가장 기만적인 형태로 변이된 경우라 생각됩니다.

저 또한 한 사람의 아시안으로서 제 정체성을 위협하는 이 불쾌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시안이라는 것이 콤플렉스가 아니라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미국사회가 각성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요. 그러나 이것이 제가 아시안이라서 하는 정신승리가 아니라 확실한 근거가 있는 명제라는 것을 제 자신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 나이에 내면을 다 뒤집듯 들여다본다는 게 결코 쉬운 일도 반가운 일도 아니었지만 도망치는 건 더 싫었기 때문에 이 도전을 직시하기로 했습니다.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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